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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장크트갈렌 지역에 있는 성 카타리나 여자 중등학교의 수업 모습. 1845년 설립된 이 학교는 여학생만 입학이 가능하다. ⓒkath.ch



일본계금융사 지난 1월17일 나온 연방법원의 결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카티의 현재 운영은 공립학교의 종교 중립 의무와 양립할 수 없으며 평등 대우 원칙에도 위배된다”라고 적시했다. “종교 중립 원칙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종교적 신념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종교적 평화를 유지하는 목적도 있다”라고 했는데, 이는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의 신념도 보호 요금 되어야 하므로 수업 내용과 방법, 조직의 형태 등이 특정 종교 교파에 맞춰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카티는 표면적으로는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하지만 학교 일정에는 순례, 교회 예배, 강림절(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 전 4주간) 축하, 아시시 주간(아시시 출신의 성 프란체스코 추모 주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참석 의무가 없다 퇴직금 해도 이런 행사에 모두 빠지면 학교 생활에 영향을 받을 것이므로 “전반적으로 공립학교의 종교 중립 의무를 위반할 만큼 강렬한 종교적 성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라는 게 판결 근거다. 재판부는 평등 원칙 위반에 대해서는 “스위스에는 남녀공학의 원칙이 있다. 성별에 따른 불이익을 해소하려는 의도라면 특정 분야에서 예외적으로 단일 성별 교육이 허용될 수 있다. 하지만 카티에처서럼 모든 과목에서 한쪽 성별을 제외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밝혔다.


연방법원은 예외적으로 이 사건 논의 과정을 대중에 공개했다. 사회적 파장이 큰 안건이고 재판에 참여한 판사 다섯 명 사이에 팽팽한 의견 대립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위헌 결정은 3대 2라는 근소한 차이로 내려졌다. 보수 성향 판사 두 명은 카티를 합헌으로 봤고, 진보 성향 판사 두 명 및 보수 정당 소속이지만 늘 예상 밖의 결정을 내리는 판사 한 명이 카티를 위헌으로 판단했다. 위헌에 표를 던진 플로렌스 오브리 지라르댕 판사는 이번 사건을 “스위스 학교의 표상(表象)이라는 근본적 물음에 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스위스의 교육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지침이 되는 판결이라는 얘기다.


카티 소송이 큰 주목을 받은 것은 ①성별과 ②종교라는 두 가지 뜨거운 쟁점을 동시에 포함했기 때문이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논점이 더 존재한다. ③전통 ④세금 ⑤선택의 자유가 그것이다. 각각의 논점을 두고 어떤 질문이 나오고 있는지, 여론이 어떻게 엇갈리고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카티는 성차별적인가? 또는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자. 여학교는 약자인 여학생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기관인가, 아니면 여학생에게 주어진 특권인가? 현재 스위스 전역에는 카티와 같은 여자 중등학교가 네 곳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테레지아눔 잉겐볼 중등학교다. 이 학교 교장 엘비라 페슬러는 여학교 모델을 이해하려면 19세기로 돌아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무교육이 시행되지 않았던 1830년대에 티치노 지방에서는 소녀 일곱 명 중 한 명만 학교에 다녔다. 주로 수도원 공동체가 여학교를 세웠고 여기서 유치원 교사, 가정교사 등이 양성됐다. 우리 여학교는 과거나 지금이나 진보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학교다(스위스 일간 〈타게스 안차이거〉 1월25일 인터뷰)”. 교육 혜택에서 소외되었던 소녀들을 가르치는 진보적 사회 기관이 여학교라는 것이다.

여학생 비율 높을수록 성별 임금격차 줄어

시대가 달라져 여성의 교육 수준이나 학업성취도가 남성을 앞지를 정도가 되었지만, 그에 비해 여성이 갖는 직업 종류나 임금수준은 여전히 뒤떨어지는 현실이 여학교 옹호 논리를 뒷받침하기도 한다. 최근 한 연구(Getik & Meier, 2024)에 따르면 교실의 여학생 비율과 여성 임금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 종류와 임금격차에 대한 동료 성별의 장기적 효과”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동료 성별, 즉 한 교실에서 공부한 친구들의 성비가 장기적으로 직업 및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반에서 여학생의 비율이 10% 증가하면 젠더 임금 격차가 2.7% 감소했다. 저자들은 여학생 비중이 높으면 여성이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의 영향에 덜 노출되고 더 나은 교육 및 직업 경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카린 켈러주터 스위스 연방 대통령. ⓒEPA



그러나 연방법원은 이 같은 역사적 배경과 여성의 현실도 여학교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에 참여한 마리안 뤼터 판사는 “역사적 불이익을 보상하기 위해 여학생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을 정당화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사회적 논의는 이미 그 이상 진전됐다”라고 봤다. 학교에서 남학생들의 성취도가 낮은 점, 그로 인해 남학생이 차별당할 가능성, 또 초등학교에 남성 교사의 비율이 낮은 점 등을 논의해야 할 시점에서 질 높은 공교육 기회를 여학생에게만 제공하는 게 맞느냐고 뤼터 판사는 반문했다.


둘째, 학교의 종교적 중립 기준은 무엇인가? 교실 내 십자가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가? 교회 예배 같은 종교 행사 참여의 자발성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법원이 늘 단일한 결론을 내는 것도 아니다. 스위스 연방법원은 1990년 초등학교 교실 내 십자가가 학교의 종교 중립 의무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유럽인권재판소 역시 2009년 학교 교실에 의무적으로 십자가를 두는 것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약 2년 뒤인 2011년, 유럽인권재판소는 기존 판결을 뒤집고 교실 내 십자가를 허용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린다. 십자가가 종교적이기는 해도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상징”이어서 교사나 학생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번 소송에서 연방법원 판사 중 두 명은 학생들이 카티에서 종교적 ‘추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자발적이라고 가정했고, 다른 세 명은 불참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압력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셋째, 가톨릭 여학교는 보존해야 할 귀중한 전통인가, 아니면 시대에 뒤떨어진 구습인가? 이번 판결을 전통 수호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이들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은 예외적 가이드라인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공공장소에서의 소음 기준은 까다롭게 책정되어 있지만, 마을 한가운데 있는 교회 종소리나 젖소 목에 달린 종소리가 이 기준에서 벗어난다고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또 오래된 역사적 건물은 현대적 건물과 동일한 안전이나 단열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가톨릭 여학교 역시 성별이나 종교에 관한 현대적 기준에서 예외 삼을 수 있는 전통이라는 주장이다.


넷째, 일부를 배제하는 학교를 세금으로 지원해도 되는가? 카티는 원래 성 카타리나 수도원이 소유하다가 2016년부터 사립 재단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시 정부로부터 중등학교 운영권을 위임받아 보조금을 받는다. 사립학교이지만 공립학교의 원칙에 종속되는 구조다. 카티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은 대부분 세금 지원을 문제 삼는다. 학교 재단의 철학에 따라 성별이든 종교든 제한할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세금에서 나가는 보조금 지원도 받지 말라는 거다. 하지만 세금이 다양한 방식의 교육에 쓰이는 것이 사회에 더 이익이라는 주장도 있다. 스위스 일간 〈NZZ〉는 카티 판결을 보도하며 이렇게 우려했다. “학습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는 초등학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는 정부가 막대한 금액을 지출하면서, 재능 있고 야심찬 중학교 여학생들에게 영감을 주는 환경을 국가가 지원하지 못한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 수준을 낮추더라도 평등화가 모든 것에 우선하고 있다(1월20일).”


다섯째, 공교육 내 다양한 선택지는 개인의 자유를 증진시키는가? 공립학교에 적용되는 성평등이나 종교 중립 원칙은 획일화된 교육으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한 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기준인가? 카티를 지지하는 쪽은 천편일률적 학교 대신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면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자유가 의도치 않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소송의 원고 중 한 명인 빌 지역 시의원 세바스티안 콜러는 이 지역에서 카티가 150명 정도의 여학생들을 흡수하기 때문에 남은 공립학교 내에서 남학생 비중이 높아지는 성비 불균형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동덕여대 공학 전환 이슈를 보며

연방법원 판사들이 참조했을 연방 헌법은 단순 명확한 언어로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누구도 종교 공동체에 가입 또는 소속되거나, 종교적 행위에 참여하거나, 종교적 가르침을 따르도록 강요받아선 안 된다(제15조 4항)”,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법은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특히 가족, 교육, 직장에서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가치의 일에 대해 동등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제8조 3항)”. 두 번째 조항의 내용이 연방 헌법에 들어간 건 1981년이다. 이 중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부분은 2000년에 개정된 것이다. 헌법이 존재해도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게 어렵다는 방증이다.




동덕여자대학교 재학생들이 2024년 11월15일 공학 전환 반대 집회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카티의 운영 방식은 이미 1990년대부터 논쟁적이었고 이슈가 법원으로 옮겨진 건 2016년이다. 2022년 4월 장크트갈렌 행정법원은 이 학교가 차별적이라는 고소를 기각했다. 그러다 이번 연방법원 위헌 판결까지 왔다. 원칙은 여러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사회 구성원들이 충분히 시간을 들여 심도 있는 논의로 사안을 다루어야 한다. 현재 동덕여대에서 남녀공학 전환 이슈를 둘러싸고 진행 중인 갈등을 보며 아쉬운 점이 그것이다. 일방적·졸속적 의사결정 과정과 그에 맞선 시위로 정작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나 교육의 역할에 관한 깊은 논의는 설 자리를 잃었다.

취리히·김진경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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